2014년 12월 31일 수요일

아버지 하나님, 어머니 하나님의 가르침, 배려!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이 땅에 친히 임하심은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된 우리를 외면치 않으시고 불쌍히 여겨 구원주시고자 하심입니다.
 
눅 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마 9:13 ....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아버지 안상홍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는 지옥의 형벌을 받을 자녀들을 먼저 생각하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당신의 평안함보다는 죽음의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자녀들의 괴로움에 더 관심을 가지시고,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자녀들을 위해 육체를 입고 이 땅까지 오셔서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시고 그 살과 피를 먹여 자녀들을 모두 살리시고 영생의 길로 이끄셨습니다. 아버지 안상홍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처럼 배려하는 사랑을 베풀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의교회 자녀들은 영생도, 천국도 약속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진홍같이 붉은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하늘 아버지, 하늘 어머니께서 얼마나 큰 배려를 우리 자녀들에게 베풀어 주셨습니까? 당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시고 하늘나라에만 계셨더라면 십자가의 수욕도, 벌레 같고 구더기 같은 인생들의 희롱과 조롱도 당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오로지 천만 천사와 우주 영물들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며 존귀와 영광을 누리실 하나님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자녀들을 먼저 생각하셨기에 모든 고통을 참아내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하나님의교회는 온 인류를 향해 배려의 사랑을 베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웃의 배고픔, 목마름, 아프고 힘든 형편을 돌아볼 뿐 아니라 영적인 사랑을 유월절을 전함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배려의 사랑을 실천하여 천국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2014년 12월 29일 월요일

사라진 안식일이 하나님의교회에 나타났다!

 
성경의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그런데 왜 많은 교회는 일요일에 예배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에 대해 패스티브닷컴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현재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일주일의 첫째 날인 일요일을 휴일로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요일이 휴일로 정해져 있는 나라의 국민들은 일요일에는 직장이나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 우리나라는 1895년 양력(陽曆)과 칠요(七曜) 제도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관청 근무시간 규정에 일요일이 휴일로 정해졌고, 대한민국 헌정 후 1949년 6월 4일 대통령령으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공휴일로 제정된 이래 변함없이 일요일에 쉬고 있다.

일요일을 공휴일로 제정해 쉬기 시작한 건 1600년 전 로마였다. 321년 3월 7일, 당시 로마제국의 통치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휴업령을 반포한다.

“모든 재판관과 시민 그리고 기술자들은 존엄한 태양의 날에 쉬어야 한다.”

한 주간의 첫날을 휴일로 반포하며 콘스탄티누스는 그날을 ‘태양의 날’, 즉 Sunday(일요일)라고 명명했다. 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제정한 달력(율리우스력)을 보완하여 7일이 기본이 되는 칠요 제도를 도입했다.

7일 단위로 한 주간을 나누어 생활한 기원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하신 창세기의 기록과 일곱째 날을 성일로 삼아 지켰던 기록이 그 기원이다(창세기 2:2~3, 출애굽기 20:8~11).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의 칠요 제도에 로마 점성가들의 사상에서 비롯된 일곱 별의 신(神)들의 이름을 접목시켜 요일명을 정했다. 일곱 별의 신들은 토성의 신, 목성의 신, 화성의 신, 태양의 신, 금성의 신, 수성의 신, 달의 신으로 불렸다. 이는 지동설이 등장하지 않았던 시대,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일곱 별의 신이 하루 24시간을 한 시간씩 차례대로 돌아가며 다스린다고 믿은 데서 기인한다.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운행하는 토성부터 목성, 화성, 태양, 금성, 수성, 달을 24시간에 맞춰 순서대로 배열하면, 첫 번째 열에 토성, 태양,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순으로 배열된다. 당시 점성가들은 바로 이 첫째 열에 오는 별의 신이 그날 하루의 첫 시간을 다스린다고 믿었는데, 콘스탄티누스는 바로 그 별의 이름을 그날의 요일명으로 정했던 것이다. 즉, 토성의 신이 첫 시간을 다스리는 날은 토요일, 태양이 첫 시간을 다스리는 날은 일요일, 달의 날은 월요일, 다음 화요일, 수요일, 수요일, 금요일이라는 요일이 만들어졌고, 그중 한 주간의 첫날을 태양의 날, 즉 일요일로 제정함으로써 일, 월, 화, 수, 목, 금, 토 순서의 칠요 제도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일요일 휴업령을 내리기 수 년 전이었던 313년, 콘스탄티누스는 관대한 정책의 칙령을 반포한 바 있다. 밀라노칙령이 그것이다. 그는 “이제부터 모든 로마인은 원하는 방식으로 종교생활을 할 수 있다. 로마인이 믿는 종교는 무엇이든 존중을 받는다.”는 포용정책을 쓰며 이전의 황제들과는 달리 기독교를 핍박하지 않고 공인했다. 하지만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주었을 뿐 공식 종교로 삼은 건 아니었다.

역사가들은 그의 이런 행보에 대해 그가 이방종교의 최고위직 칭호를 여전히 지니고 있었고 죽을 때까지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은 것을 미루어 볼 때 정치적 입지를 굳히려는 의도였다고 해석하고 있다. 당시 로마의 대다수 국민들이 미트라(태양신) 교도였기 때문에 그들을 달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로마 교회였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미트라 교도들을 전도하기 위해 그들의 제도를 많이 끌어들였다. 그중에 하나가 그들이 태양신에게 예배하던 ‘일요일’을 예배일로 정한 것이다. 황제가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일요일에 예배하는 것은 퍽이나 합리적이라고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계명일 뿐이었기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산중으로, 사막으로 피해 믿음을 지켜나갔다.

일요일 휴업령이 반포된 지 4년 후인 325년, 가톨릭은 니케아공의회를 통해 예배일을 안식일(토요일)에서 일요일로 공식적으로 바꿨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거룩한 성일로 정하신 일곱째 날 안식일은 이렇게 사라졌고, 오랫동안 어둠 속에 감춰져 있었다. 하나님의 구속의 때가 되어 진리의 빛이 드러나기 전까지.


 
 
이렇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안식일은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일요일 예배가 난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을 자녀들을 위해 모든 진리를 되 찾아 주시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시온! 하나님의교회를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참 진리인 새 언약 안식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에서 안식일 지켜 영원한 안식의 축복까지 모두 받으시길 바랍니다.
 
 

2014년 12월 28일 일요일

크리스마스, 산타클로스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12월 25일!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가 얼마전에 지났습니다.
이는 기독교의 최대 축제일로 지내고 있지만 기독교 뿐 아니라 종교를 막론하고 전 세계인의 축제로써 크리스마스가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크리스마스가 예수님의 탄생일 일까요?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면 당연히 지켜야 겠지만 하나님의교회는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왜 일까요? 성경에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눅 2:3~11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 되었더라 거기 있을 그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날짜에 대해 전혀 언급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세상은 어떤 근거로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지키고 있는 것일까요?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그리스도(Christ)와 미사(Mass)의 합성어입니다. 흔히 그리스도의 뜻을 기리기 위한 의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이때 행해지는 의식은 예수님의 생애나 가르침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교도에서 유입된 잡다한 의식의 혼합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인류학자 제임스 프레이저는 그의 저서에서 “전 로마와 그리스에서 12월 25일을 공휴일로서 축하하는 최대의 이교 예배는 이교 태양신 예배인 미트라 종교였습니다. 이 동계 축제를 탄생 즉, 태양의 탄생이라고 불렀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태양신의 탄생일이 기독교 내로 유입되면서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둔갑했다는 말입니다. 이 때문에 크리스마스 때 카톨릭에서 행해지는 수많은 의식들이 태양신교의 의식과 닮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태양신교의 의식 중 12월이 되면 3대 축제가 열렸는데, 기독교가 그 풍습 또한 그대로 들여왔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주고 받는 풍습은, 3대 축제 중 하나인 시길라리아(Sigillalia) 제일에 어린아이에게 인형과 같은 선물을 나눠주는 풍습을 계승한 것입니다. 며칠 동안 환락을 즐기는 것도 사투르날리아(Saturnalia) 제일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태양신교의 사상은 크리스마스트리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고대 바벨론 전설에 따르면 한 상록수가 죽은 나무 그루터기에서 솟아났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새로 솟아난 상록수가 죽은 태양신 니므롯이 그의 아들 담무스 안에서 회생한 것을 상징한다고 믿었습니다. 이 외에도 이집트, 로마 등 여러 국가에서 사철 푸른 나무, 일명 거룩한 나무에 대한 샤머니즘적인 숭배사상이 있었습니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새해가 되면 악마를 물리치기 위하여 집과 주변을 상록수로 꾸며왔던 주술적인 신앙의 형태가 있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종려나무를 신성시했으며, 로마에서는 전나무를 거룩하게 구별하고 농신제 기간 동안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 열매를 장식하며 태양신을 숭배하는 신앙적 행위로 기념해 왔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는 이러한 나무에 대한 사상을 재현한 것입니다.

'Festivals, holy days and saints’ days'는 “크리스마스 나무의 도금한 견과나 볼들은 태양을 상징하며 … 동지절의 모든 축제는 크리스마스에 흡수되었고 … 크리스마스 나무는 오딘(Odin, 스칸디나비아의 신)의 거룩한 전나무에 바친 영예에서 온 것”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친숙한 산타클로스 역시,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270년경 소아시아 지방(지금의 터키)의 항구도시 파타라에서 태어난 성 니콜라스(St. Nicholas)가 산타클로스의 효시입니다. 니콜라스는 남몰래 많은 선행을 베푸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결혼을 하지 못하는 세 자매의 사연을 듣고 그들을 돕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금 주머니를 굴뚝으로 떨어뜨렸고 금덩이는 벽에 걸어둔 양말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세 자매는 결혼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이야기는 유럽으로 전해졌습니다. 12세기 초 프랑스의 수녀들이 니콜라스의 축일(12월 6일)의 하루 전날인 5일에 성 니콜라스의 선행을 기념했고 이후 전 지역으로 이러한 풍습이 퍼져나갔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들이 기념했던 니콜라스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산타클로스의 모습과는 다릅니다. 현재의 산타클로스는 영리 목적으로 조작된 것이며, 물론 그리스도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오늘날처럼 산타클로스가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다니는 모습으로 일반 사람들 앞에 등장한 것은 1822년 성탄절 이브로, 뉴욕의 신학자 클레멘트 무어가 쓴 ‘성 니콜라스의 방문’이라는 시가 효시였으며, 본래 날렵하고 키가 큰 모습에서 통통한 볼에 뚱뚱한 모습을 하게 된 것은 토마스 나스트라는 19세기의 만화가가 20년 동안 잡지에 성탄절 삽화를 그리면서 완성한 것입니다. 또 현재처럼 빨간 옷을 입게 된 것은 1931년 미국 해돈 선드블롬이 코카콜라 광고를 위해 그린 그림에서 유래한 것입니다(시사용어사전 2003).”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약 300년 후, 12월 25일이 예수님의 탄생일로 제정되면서 이 같은 태양신 숭배 및 이교도의 풍습이 기독교화된 것입니다. 그것은 대부분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태양신 축제에 참여하고자 했던 부패한 기독교인들의 변명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형성하고 있는 모든 풍습과 의식이 그리스도가 아닌 태양신과 연관돼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태양신의 축제인 크리스마스! 이 시대 참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교회는 그래서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에 대해 이제 알게 되었다면 그리스도인으로써 절대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말아야 겠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사람의 계명으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치 않는 것은 행치 말아야 겠습니다.
 

 
 

2014년 12월 17일 수요일

하나님의교회에서 새언약 유월절로 천국을 미리미리 준비하세요!

 
사람은 알고보면 너무나 나약한 존재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 하지만 천재지변 가운데서는 속수무책이니 말입니다.
성경은 최후의 재앙에 대해 여러차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들이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마 24:3,7
....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곳곳에서 들려오는 전쟁, 테러의 소식들
굶주림에 죽어가는 이들의 소식들
지진, 태풍, 홍수 등의 천재지변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들...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말세를 만난 우리들에게 성취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두려움 가운데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전한 도피처입니다.
 
렘 4:5~6
너희는 유다에 선포하며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이 땅에서 나팔을 불라 하며 또 크게 외쳐 이르기를
너희는 모이라 우리가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자 하고
시온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라, 도피하라, 지체하지 말라,
내가 북방에서 재앙과 큰 멸망으로 이르게 할 것임이니라
 
크나큰 재앙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시온으로 도피하라 하셨습니다.
시온은 절기지키는 곳으로(사 33:20)
생명의 새언약 유월절 하나님의 절기가 있는 하나님의교회
이 시대 가장 안전한 도피처라 할 수 있습니다.
새언약 유월절을 지킨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정받아
천국이 보장된 자들입니다.
 
재앙이 가득한 이 시대에
하나님의 교회에서 새언약 유월절로
천국의 축복을 미리미리 챙겨두시길 바랍니다.
 
 
 

2014년 12월 10일 수요일

이 시대 성령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 어머니하나님 §

수 많은 교회에서 '성령 부흥회'라는 것을 합니다.
하나님께 성령을 받기 위한 행위라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정말 성령 부흥회를 통해 하나님께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걸까요?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성령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려주는지 살펴봐야 겠습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을 믿었던 사도들이 오순절에 성령을 받았다. 그 성령의 역사로 사도들은 방언을 하며 복음을 전파하므로 수많은 사람들이 침례를 받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성령의 역사는 실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오늘날 신앙의 길을 가는 우리들도 이러한 성령의 역사하심을 구하고 있다. 해서 하나님을 진실되게 믿는다고 하는 신앙인들은 성령을 받기 위해 부흥회나 유명 목사의 집회에 참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2,000년 전 사도들이 성령 받은 것은 떠들썩한 부흥회나 유명 목사의 집회가 아니었다. 단 한 가지 조건, 그것이 완벽했을 때 성령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사도행전 5:32)

성령 받는 조건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어떤 이유나 변명, 자신의 생각을 배제한 말 그대로 ‘순종’이다. 이러한 순종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성령의 임재도 없다. 이스라엘의 제1대 왕이었던 사울도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아 결국 성령이 떠나고 악령이 들어갔던 역사가 있었다. 이를 반추해 볼 때, 우리는 과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지 스스로 신앙의 길을 돌아보아야 한다(사무엘상 15:1~31).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사무엘상 16:14)

사울 왕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은 결과는 비참했다. 불순종의 말로는 성령이 떠남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지 못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사울의 역사를 교훈 삼아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성령의 임재를 기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성교단들은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안식일, 3차 7개의 절기 등 어느 것 하나 지키지 않고 있음에도 순종을 말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명하신 가을 절기인 초막절도 지키지 않으면서 사람의 계명인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기성교단들의 행태를 과연 ‘순종’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성령을 받고자 한다면 지나친 착각일 것이다.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천하 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창일함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애굽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받을 벌이 이러하니라 (스가랴 14:16~19)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는 자는 결코 성령을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신은 떠나갈 것이며 악령의 역사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이다.
 
<출처 : 패스티브닷컴>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여 하나님의 절기를 지켜야 이 시대는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교회는 3차 7개의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며
그 가운데 초막절 절기를 통하여 늦은 비 성령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안상홍님께서 친히 오셔서 세워주신 절기로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세워주신 절기와 동일한 것입니다.
 
초막절 절기를 지킴으로써
예루살렘 되시는 어머니 하나님께 늦은 비 성령의 축복을 받게되어
구원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교회에서 안상홍님께서 세워주시고
어머니 하나님께서 성령의 축복을 허락하시는
새언약의 절기를 모두 지키시어 천국에 입성하시길 바랍니다.




2014년 12월 8일 월요일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준비 잘 하고 계십니까? <안상홍 증인회 하나님의교회>

예수님의 탄생일은 언제입니까?
 
12월 25일!!!  크리스마스!!!! -----------> 하나님의교회 식구들을 제외한 오늘날 이 세상 모든이들의 답변입니다.
 
하나님을 믿던, 믿지 않던 한결같은 대답입니다.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크리스마스는 모든이의 가슴을 설레이게 만드는 전 세계인의 축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교회는 크리스마스에 대해 좀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왜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니며, 성경에서 크리스마스를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자들이 천국에 가는지 알고 계십니까? 바로 예수님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른 자들입니다.
 
등산을 하다 보면 평지를 걷기도 하고 가파른 등성이를 걷기도 하며 때론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있는 길을 지나 햇살이 가려진 수풀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참을 걷다 보면 어느덧 정상에 도착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의 기쁨과 환희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지요.

산길을 따라가다 보면 문득 ‘이 길을 가장 먼저 걸어갔던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도 오르지 않은 산속을 분명 누군가는 먼저 걸어갔기에 이 길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최초로 산을 오르며 정상까지 길을 낸 사람은 넘어지고 가시에 찔리고 다치면서 길을 개척했을 것입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그 흔적을 따라 비교적 안전하게 산을 오를 수 있습니다. 정상에 올랐을 때의 환희와 기쁨의 감정은 분명 최초로 산을 오른 사람 덕택도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오르지 않는 길을 개척하신 분이 또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최고의 기쁨과 행복을 주시려고 쉴새 없이 길을 내셨고, 그 과정에서 고난도 많이 당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인류인생들에게 ‘천국’이라는 정상까지 인도하시기 위해 채찍과 조롱을 견디시고 피까지 흘리시며 묵묵히 천국 길을 닦아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남겨놓으신 흔적과 발자취는, 구원을 목표 삼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길입니다. 만약 그 길을 벗어난다면 길을 잃고 헤매다 결국 최종 목적지까지 도착하지 못할 것입니다. 등산로가 아닌 방향을 택한 등산객들이 조난당하는 경우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발자취를 그대로 걸어야 우리의 목적지인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누가복음 22:15)

구원은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갔을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 중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안식일과 유월절은 우리에게 남기신 ‘천국 발자취’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발자취를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려 하려 하여 을 보였노라 (요한복음 13: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15)

정상까지 이어지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겠습니다. 일요일예배와 크리스마스는 예수님께서 내신 길이 아닙니다. 이제라도 방향을 틀어 안식일과 유월절을 지킵시다. 그 행위가 당신을 천국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2014년 12월 5일 금요일

하나님의교회는 어머니하나님이 계심에 행복합니다.*^^*

평면사고와 입체사고

 
세상을 살다 보면 처음으로 생소한 일을 하게 될 때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라 자신감도 부족하고 불안한 마음에 눌려서 ‘과연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혹은 ‘이 일이 옳은 것인가, 잘못된 것인가?’ 하며 고민할 때가 있다. 내일 일은 고사하고 당장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여 끔찍한 재앙과 사고를 당하는 현실을 날마다 목도하면서 불확실한 미래와 삶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 70:10)

사람은 누구나 안락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가로와 세로만 생각했던 평면사고보다는 가로와 세로와 높이, 넒이까지 생각하는 입체사고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이다. 봄이 왔어도 봄만 생각하는 평면사고에서 벗어나 이제는 곧 여름이 오고 가을과 겨울까지 닥친다는 것을 내다보면서 입체사고로 진화되고 변화된 삶을 추구하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1:15~16)

이 땅에 살면서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야말로 평면사고에서 벗어나 입체사고, 고차원의 사고를 가진 자일 것이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온대지방에 살면서도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그저 오뉴월이 한창인 메뚜기 같은 사고를 가지거나, 여름 한철 내내 신바람나게 노래하고 즐기던 베짱이 같은 사고를 가진 자들은 결코 생각하지 못하는 세계인 것이다.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때가 되면 가을, 겨울이 지나 다시 새로운 봄이 오듯이, 우리 인생도 이생이 지나가면 반드시 내생이 오리라. 그 내생을 보장하는 시온에 거하고 있고, 어머니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 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가?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 거기 거하는 백성이 사죄함을 받으리라 (이사야 33:20~24)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출처 : 패스티브닷컴>
 
하나님의교회는 어머니 하나님이 계시기에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세상살이라지만
우리의 본향이 하늘임에 돌아갈 고향을 생각하니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의 삶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하늘 본향을 바라보며 힘차게 살아가야 겠습니다~*
 
 
 

2014년 12월 3일 수요일

엘로힘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교회는 엘로힘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엘로힘 하나님에 대해 알고계신지요~
하나님을 믿는 이는 많지만 엘로힘 하나님을 알고 믿는 기독교인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되 힘써 알라하셨습니다. (호 6:3) 하나님을 아는 것이 곧 영생이기 때문입니다.(요 17:3) 엘로힘은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뜻하는 히브리 원어로 복수개념으로 구약원어 성경에서 많은 부분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엘로힘이란 '하나님들'이라는 뜻으로 단수로서의 하나님이 아닌 둘 이상의 하나님을 말하는 것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는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구원자로 영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 안에는 남자형상의 하나님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여자형상의 하나님이신 어머니 하나님이 계심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창 1장 26~27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을 모델로 하여 사람을 창조하시니 남자와 여자가 창조되었다면, 하나님의 형상 안에 남성적인 형상과 여성적인 형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하신 말씀 속에서도, '우리'라는 말은 분명 단수가 아닌 복수 개념입니다. 한 분 하나님이 아닌 두 분, 즉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함께 세상만물을 창조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1장의 내용을 통해서도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 11장 1~7절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1장에 나타나셔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하시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께서 이곳에서도 함께 역사하심으로 인간의 오만함을 꺾으시고 바벨탑의 역사를 중단시키시는 장면입니다. 여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자 우리가 내려가서 …"라고 말씀하심으로 아버지 하나님뿐만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도 존재하심을 증거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에서 알려주신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이사야 서에서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 6장 8절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러 갈 사람을 찾고 계실 때, 하나님께서는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또한 하나님 아버지 한 분만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께서 더불어 함께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영으로 우리 구원을 위해 사역하시는 하나님께서 기약이 이르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딤전 6장 15절) 그러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시는지 계시록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계 22장 17절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늘 '우리'라는 개념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알리시고 표현하신 그 하나님께서 육체로 나타나실 때에는 성령과 신부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우리에게 생명수를 주시고 계십니다. 성령과 신부께서 우리에게 생명수를 주실 수 있는 것은, 창조 시에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시며 인류를 창조하신 바로 그 엘로힘 즉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에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죽지 아니함(생명)이 있다고 하셨습니다(딤전 6장 16절). 즉,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하나님께서 친히 세워주신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에게만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의 예언을 따라 임하신 하늘 아버지 안상홍님과 하늘 어머니를 하나님의 교회는 믿고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오셔서 엘로힘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생명수를 값없이 모두 받아가시어 영생의 축복을 모두가 받으시길 바랍니다.
 

 

2014년 12월 1일 월요일

성경에 없는 일요일예배! 안식일을 지키는 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교회는 안식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친히 본 보여주심이요, 하나님께서 친히 명하신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는 수 많은 기독교인들은 안식일이 아닌 일요일 예배를 지키고 있습니다. 같은 성경을 보는데 왜 저들은 성경에도 없는 일요일예배를 지키는 것일까요?
 
패스티브 닷컴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현재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일주일의 첫째 날인 일요일을 휴일로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요일이 휴일로 정해져 있는 나라의 국민들은 일요일에는 직장이나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 우리나라는 1895년 양력(陽曆)과 칠요(七曜) 제도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관청 근무시간 규정에 일요일이 휴일로 정해졌고, 대한민국 헌정 후 1949년 6월 4일 대통령령으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공휴일로 제정된 이래 변함없이 일요일에 쉬고 있다.

일요일을 공휴일로 제정해 쉬기 시작한 건 1600년 전 로마였다. 321년 3월 7일, 당시 로마제국의 통치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휴업령을 반포한다.
“모든 재판관과 시민 그리고 기술자들은 존엄한 태양의 날에 쉬어야 한다.”

한 주간의 첫날을 휴일로 반포하며 콘스탄티누스는 그날을 ‘태양의 날’, 즉 Sunday(일요일)라고 명명했다. 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제정한 달력(율리우스력)을 보완하여 7일이 기본이 되는 칠요 제도를 도입했다.

7일 단위로 한 주간을 나누어 생활한 기원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하신 창세기의 기록과 일곱째 날을 성일로 삼아 지켰던 기록이 그 기원이다(창세기 2:2~3, 출애굽기 20:8~11).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의 칠요 제도에 로마 점성가들의 사상에서 비롯된 일곱 별의 신(神)들의 이름을 접목시켜 요일명을 정했다. 일곱 별의 신들은 토성의 신, 목성의 신, 화성의 신, 태양의 신, 금성의 신, 수성의 신, 달의 신으로 불렸다. 이는 지동설이 등장하지 않았던 시대,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일곱 별의 신이 하루 24시간을 한 시간씩 차례대로 돌아가며 다스린다고 믿은 데서 기인한다.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운행하는 토성부터 목성, 화성, 태양, 금성, 수성, 달을 24시간에 맞춰 순서대로 배열하면, 첫 번째 열에 토성, 태양,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순으로 배열된다. 당시 점성가들은 바로 이 첫째 열에 오는 별의 신이 그날 하루의 첫 시간을 다스린다고 믿었는데, 콘스탄티누스는 바로 그 별의 이름을 그날의 요일명으로 정했던 것이다. 즉, 토성의 신이 첫 시간을 다스리는 날은 토요일, 태양이 첫 시간을 다스리는 날은 일요일, 달의 날은 월요일, 다음 화요일, 수요일, 수요일, 금요일이라는 요일이 만들어졌고, 그중 한 주간의 첫날을 태양의 날, 즉 일요일로 제정함으로써 일, 월, 화, 수, 목, 금, 토 순서의 칠요 제도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일요일 휴업령을 내리기 수 년 전이었던 313년, 콘스탄티누스는 관대한 정책의 칙령을 반포한 바 있다. 밀라노칙령이 그것이다. 그는 “이제부터 모든 로마인은 원하는 방식으로 종교생활을 할 수 있다. 로마인이 믿는 종교는 무엇이든 존중을 받는다.”는 포용정책을 쓰며 이전의 황제들과는 달리 기독교를 핍박하지 않고 공인했다. 하지만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주었을 뿐 공식 종교로 삼은 건 아니었다.

역사가들은 그의 이런 행보에 대해 그가 이방종교의 최고위직 칭호를 여전히 지니고 있었고 죽을 때까지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은 것을 미루어 볼 때 정치적 입지를 굳히려는 의도였다고 해석하고 있다. 당시 로마의 대다수 국민들이 미트라(태양신) 교도였기 때문에 그들을 달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로마 교회였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미트라 교도들을 전도하기 위해 그들의 제도를 많이 끌어들였다. 그중에 하나가 그들이 태양신에게 예배하던 ‘일요일’을 예배일로 정한 것이다. 황제가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일요일에 예배하는 것은 퍽이나 합리적이라고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계명일 뿐이었기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산중으로, 사막으로 피해 믿음을 지켜나갔다.

일요일 휴업령이 반포된 지 4년 후인 325년, 가톨릭은 니케아공의회를 통해 예배일을 안식일(토요일)에서 일요일로 공식적으로 바꿨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거룩한 성일로 정하신 일곱째 날 안식일은 이렇게 사라졌고, 오랫동안 어둠 속에 감춰져 있었다. 하나님의 구속의 때가 되어 진리의 빛이 드러나기 전까지.